만나고싶었습니다

하재주 동문님, 반갑습니다. 서울공대지 독자이신 동문들께 간단히 현재 동문님의 근황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56년생으로 환갑도 지났지만 젊게 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산악자전거를 즐겨 타고 다니며 재작년 8월에는 몽블랑을 7박 8일간 산악자전거를 타고 넘었는데 스키장과 비슷한 경사의 너무 어려운 곳에서 타다가 어깨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골프도 못 치고 1년 반 동안 겨우 자전거만 살살 타고 다니고 있어요. 워낙 아웃도어 운동을 좋아해서 대덕연구단지 체육공원에서 투 언더파로 골프 대회에도 입상하고 전국 아마추어 수영 대회에서 메달도 여러 개 따고, 스키 등을 좋아하며 즐겨 하고 있어요. 

 

1975년에 서울대 원자핵공과를 진학하셨는데 당시 원자핵공학을 선택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우리 때는 입학할 때 신입생을 계열별로 뽑았어요. 그래서 1학년 때는 고등학교 같은 느낌이었고 2학년 진급할때 학과를 선택하였어요. 1학년 때 공부도 별로 안 했고 학생운동하느라 성적이 그렇게 좋지가 않았어요. 학과 선택을 해야 하는데 원자핵공학과 이름이 너무 멋있었어요. 원자핵공학과에 가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신기한 일이 있을 거 같았어요. 

 

대학생 시절의 생각나는 은사님이나 동료, 선후배가 있으신지요?

 

제게는 강창성 교수님의 수업이 가장 인상에 많이 남아요. Reactive Kinetics라는 수업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강의가 너무 재미있어서 수업시간에 막 필기하고 집에 가서 새 노트에 깔끔하게 다시 정리하였어요. 강 교수님이 강의를 재밌게 잘 하셨는데 수업 중에 강 교수님이 말한 것이 인상에 남는데, Researcher보다 Project Manager가 되라고 하셨어요. 강 교수님이 원자력 분야에서는 Researcher보다 Project Manager가 강점이 있다고 하신 말씀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그분은 학계에만 계셨던 분이 아니고 여러 분야를 하셨기 때문에 Manager가 되라는 말씀이 와닿았습니다. 실제 원자핵공학과는 전자, 기계, 재료 등등 두루두루 다 배우잖아요. 각각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부족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려면 두루두루 아는 것이 아주 유용하죠.

 

학창시절의 추억이 있으시면 한 두 가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추억이라기보다 저는 학부생 때 군대를 갔다 온 것을 늘 자랑합니다. 저는 진주에서 중학교까지 다녔고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어요. 대학에 입학해서 중간에 군대에 현역으로 갔다 왔어요. 그때는 학부 때 군대를 갔다 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우리 과에서 학부 때 용감하게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누구였냐면, 황주호, 서정태, 나, 한성희 이렇게 네 명입니다. 한성희는 방위로 복무해서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군대 갔다 왔다고 쳐 주지 않았고, 서정태는 한수원 입사했다가 유학 갔고, 황주호는 졸업하고 바로 유학 갔다가 돌아와서 교수하고 있고, 저는 한국중공업(지금의 두산 중공업)에서 3년 정도 근무하다가 유학 갔어요. 돌아왔을 때는 다른 동기들보다 굉장히 늦게 직장생활을 시작했죠. 저는 1992년에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입사했는데 제 동기들은 대부분 86년쯤에 연구원에 입사했습니다.

 

졸업 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박사학위를 받으신 세부분야는 어떤 분야이고 이후에 원자력연구원에서 연구하신 분야와 어떤 관련이 있으신지요?


석사과정 때는 열수력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나비에-스토크스방정식을 계산하고 컴퓨터를 이용한 코딩을 많이 했어요. 박사과정에 들어갈 때 연구 주제도 안 떠오르고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정말 열수력에 소질이 있는지 망설여졌어요. 중성자의 움직임은 눈에 다 그려지는데 열수력은 2년이나 공부했지만 visualize가 안 되니까 소질이 없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전공을 바꿔야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AI로 바꾸었어요. plant map function diagnosis라고 원자력발전소에 고장이 났을 때 인공지능으로 고장을 어떻게 identify하느냐 그런 문제를 연구했어요. 그때는 컴퓨터의 성능이 매우 안 좋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빠르게 처리가 안 되고 사람의 logic을 흉내 내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새로운 컴퓨터 수업도 많이 듣고 Logic structure 관련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왔어요. 이후 원자력연구원에서는 데이터베이스 관련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했고 그 후로는 여러 분야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generalist가 되었어요.

 

지금까지 국내 원자력 안전, 연구용 및 신형 원자로 개발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역할을 해오셨는데요. 간단하게 우리나라 원전의 발전사와 그 과정에서 원장님께서 가장 보람이 있고 기억에 남았던 것이 어떤 일이 있으신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 연구원에 와서 원자력안전 분야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안전연구본부가 없었는데 안전연구본부가 있어야 한다고 원장님을 설득해서 제가 초대 안전연구본부장을 맡았습니다. 이후에 하나로원자로 개발본부장을 하였고, 기초과학본부로 개편했다가 스마트원전까지 포함한 신형 원자로 개발 연구본부가 되었어요. 제가 원자력연구원에 오래 있으면서 새로운 조직을 몇 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본부장이 되었어요.
저의 시작점은 원자력 안전분야였지만 원자로수출을 한 게 제일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네덜란드를 공략했는데 실패하고 두 번째로 공략한 요르단이 잘 되었어요. 요르단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1000킬로 급 원자로를 수출한 나라이고 UAE보다 한 달 정도 빨리 시작했습니다. 요르단 수출이 열리니까 중동의 여러 나라와 접촉을 하여 사우디에 스마트원자로 2개를 수출했습니다. 처음 요르단과 접촉하면서 아무도 원자로 수출에 대해 생각하지 않던 시절에 개척정신으로 시도를 했어요. 사우디 수출도 마찬가지로 제가 처음 제안했습니다. 4개국에 2개씩 8개를 짓는 글로벌 스마트 strategy 계획을 세워서 한국, 미국, 말레이시아, 사우디를 동시에 추진한 결과 사우디 수출 길이 열렸습니다. 사우디에 스마트 원전 수출이 안 되었다면 스마트원전은 paper plant로 사장되었을 겁니다. 과학기술인이 사우디 대사관에 찾아오고 사우디 정부 인사를 만난 경우는 제가 최초라고 하더군요. 스마트 원전은 당시 우리 연구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어요.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중요한 과제가 되었어요. 지금은 우리나라 에너지전환 정책에 새로운 원자로를 짓지 않는다 하니까 우리가 가진 원자로 기술을 지금 어떻게 유지하느냐 문제가 중요합니다. 지금 사우디랑 관계가 워낙 좋기 때문에 사우디에서 연구원들이 60여 명 정도 한국에 파견 와 있어요. 중동 국가들은 신뢰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우리나라는 인사가 너무 자주 바뀌어서 사우디가 그 부분에서 많이 아쉬워합니다. 저는 운이 좋았던 게 사우디에서 처음 만나서 신뢰를 쌓아놓았고 3년간 국제기구에 있다가 다시 연구원으로 돌아오니까 사우디 사람들이 매우 반가워했어요. 신뢰가 중요해서 파트너쉽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력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기구(OECD NEA, Nuclear Energy Agency) 원자력개발국 국장, 국제원자력기구(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최고 자문기구인 ‘원자력에너지 자문위원회(SAGNE,the Standing Advisory Group on Nuclear Energy)’ 위원 등 국제적으로도 많은 활동들을 하셨는데요. 어떤 일들과 역할들인지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떠한 계기로 이런 활동을 하시게 되었는지요?


OECD NEA에 가게 된 것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2013년에 정말 더웠던 광복절 전날 휴가를 내고 자전거를 타고 국토 종단을 하고 있었어요. 상주에서 이천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중에 OECD NEA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원자력연구원장 공모가 나서 저는 원장 공모에 응모할 생각이었는데 전화를 받고 마음을 바꾸어서 OECD NEA에 응모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미국에서 자국 출신의 Macwood 씨를 이미 내정해 놓고 저는 들러리였어요. 제가 인터뷰를 무척 잘 해서 최종 후보로 저와 Macwood 두 사람이 올라갔습니다. 한국에서 금요일 밤 12시에 파리에서 대통령급인 OECD 사무총장이 직접 저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신을 선택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그 후, Macwood가 사무총장이 되고 나서 밑에 국장 자리가 비어있는데 저랑 같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경쟁하던 사람인데 그 밑으로 들어가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좀 안 좋았지만 국제기구에서 경험이라도 쌓자 생각하고 갔어요.

 

국제기구에서의 활동이 현재 원장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시나요?


OECD NEA 원자력개발국장은 에너지 정책, fuel cycle, economics를 모두 관여하는 곳으로 oversight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 저에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각국의 주요 인물을 많이 만나면서 인적 네트워크가 굉장히 커졌고 국제적으로 일을 하면서 보는 시각이 많이 넓어졌습니다. NEA가 OECD 산하 기구이기 때문에 IAEA와도 많은 일을 협력했습니다. 그래서 원자력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와 석유에너지 관련된 분야와 협력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NEA 대표 자격으로 원자력에너지 자문위원회(SAGNE)에 참여했습니다. SAGNE에는 observer 회원으로 2년 동안 참여하였는데 각종 conference나 keynote speech가 있으면 NEA 소속으로 IAEA에 온 사람들을 극진히 대접을 해 줘서 좋았습니다.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면 업무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문화 등을 배울 수 있었고 국제적인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등 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원자력연구원에 와서 여러 제도를 많이 개선했는데 국제기구에서의 경험으로 휴가 제도, 인사 평가 제도 등의 아이디어를 한국 실정에 맞게 많이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국제협력에서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하고 업무협력을 할 일이 생기면 NEA에서 늘 자주 만났던 사람들과 업무협력을 하게 되니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 공과대학은 원장님과 같은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산업계뿐만 아니라 학계와 사회 전반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변화가 워낙 빨라서 ‘지금 배운 것을 졸업하면 써먹지 못할’ 정도입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글로벌 리더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어떤 준비를 더 해야 하는지, 학교가 중점을 두고 육성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국제기구는 사실 technical한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전문분야는 그들도 expert를 불러서 소통하는 방식으로 일합니다. 글로벌 리더로, 구체적으로 국제기구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두 가지를 굉장히 잘 해야 하는데 하나는 영어이고, 다른 하나는 communication skill입니다. 우리나라는 토론하는 문화가 약한 편입니다. 제가 있었던 부서도 같은 나라 사람들이 아예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여러 의견을 들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communication skill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기술자들끼리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국제기구에서는 안 싸우고 대화를 통해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소통하는 스킬이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학생 때에 group discussion을 많이 해 봐야 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 방법, 상대방이 틀린 이야기를 해도 기분 안 나쁘게 교정하는 방법 등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기술적인 영역에서는 전혀 뒤처지지 않으니까 여러 다양한 주제를 주고 group discussion을 많이 해 보도록 학교가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공대 박사 학위는 컴퓨터를 엄청 돌려서 계산해서 학위를 받는데 글로벌 리더가 되는 데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장님처럼 여러 가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요?


능력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성격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똑같은 일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길 가다가도 잘못된 길을 갔을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고 길이 나오겠지 생각하고 앞으로 그냥 갑니다. 새로운 것을 늘 찾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분야를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다 보니까 새로운 것들이 계속 보이고 저거 해 보면 재밌겠네 하고 도전하게 됩니다. 내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재밌어 보이는 일을 계속 찾아서 새롭게 하게 되더라고요. 박찬규 부장님이 한 번은 내 전공분야도 아닌 일을 저에게 시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재밌어 보여서 제가 하게 되었어요. 나중에 왜 저한테 그 일을 시켰는지 물어봤었는데 나보고 “용감하니까 할 것 같았다.”라고 하시더군요. 실패하면 실패하는 거고, 안되면 어때요. 실패하면서 배우는 것도 있지 않겠느냐 생각하고 시도하는 거지요.

 

연구원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로서 구성원들에게 강조하시는 것들은 어떤 부분인지요? 2018년에 연구원 차원에서 가장 크게 염두에 두고 계획하고 구상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우리 연구원들이 전반적으로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올해는 분위기를 좀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과거나 현재보다 미래를 위해서 도약하고자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5대 연구방향을 정했어요. 정부 출연기관이므로 정부 정책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봤습니다. 첫째로 소셜 이슈에 기여해야겠다고 생각되어 안전 문제와 사용 후 핵연료 문제를 정했어요. 둘째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자 스마트원전 건설을 정했어요. 내년 초까지 해외에 2기의 건설 계약을 수주할 계획인데 아직까지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기술들이 세 번째입니다.
우주, 극지, 심해저 등 원자력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지역에 원자력 기술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원자력 기술이 사라지면 큰일이므로 쇄빙선이나 초대형 선박에 원자로를 설치하는 미래 기술 등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넷째로 국방과 안보분야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얘기할 수 없지만 중성자 빔, 핵전쟁의 EMP를 방호하는 radiation protection등을 연구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것인데 하나로 원자로, 양성자 가속기 등입니다.

 

원자력연구원에는 우리 서울 공대 동문들이 많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동문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잘 하고 있는 면은 당연히 많을 테니 접어두고, 동문님이 보실 때 특히 후배 동문들에게 어떤 면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기회에 우리 동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시각이 좀 좁다고 생각됩니다. 자존심이 있어서 자기 분야에 잘하고 똑똑하다는 생각이 너무 강합니다. 다른 학교 출신들은 노력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것저것 찾아보고 노력하고 대부분 잘 배우고 겸손합니다.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은 시각이 좁고 노력이 좀 부족합니다. 겸손하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오픈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pride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한쪽으로만 자신을 가둬두는 것은 안 좋은 것 같아요.


1992년부터 원자력연구원에 계신데 원자력연구원 자랑도 좀 부탁드립니다.


자랑할 게 많습니다. 지난 60년 가까이 이룬 게 많습니다. 원자력 기술의 본산이었습니다. 원자력연구원은 기술의 근원이고 반박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원전 설계 기술을 자립하였고 이제는 새로운 분야로 도약하고 있어요. 해외로 원전을 수출하는 등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해냈습니다. 20년 만에 기술 자립이라는 성과만으로도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한참 씨를 뿌리는 미래 기술이 5년 내지 10년, 또는 20년 후에 큰 산이 될 거라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지금 씨를 뿌리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동문님께서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훈이 正(바를 정)자입니다. 아버지가 항상 바르게 살아야 된다고 강조하셨고 항상 정공법으로 돌파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잔머리나 얕은수를 쓰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변칙적인 것보다 바르게 살아야 되고, 바르게 나가다 보면 어려운 길도 많지만 나중에 다 해답이 생깁니다. 보통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성공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는데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낮은 성공 가능성을 높여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도 안 해 본 것에 대해 높은 성공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잔머리 굴리는 것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합니다. 노력하면 성공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말이 맞습니다.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


하재주 동문은 1956년 진주에서 태어나 1975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입학하였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원자력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
았다. 1992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입사해 신형원자로개발연구소장, 연구로이용개발본부장, 원자력기초과학연구본부장, 원자력안전연구본부
장 등 원자력 안전, 연구용·신형 원자로 개발 분야에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기구(OECD/NEA) 원자력
정책개발국장에 선임돼 원자력 개발 정책과 경제성 분석 분야를 총괄했으며, IAEA(국제원자력기구) 최고 자문 기구인 ‘SAGNE(원자력에너지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원자력, 핵연료주기, 폐기물 기술 분야에 대한 IAEA의 활동과 지속적 에너지 개발을 위한 원자력의 역할 평가
등에 대해 자문 역할을 수행하는 등 국내를 대표하는 원자력 전문가 중 한 명이다.